눈으로만 읽거나 단순히 밑줄만 긋는 수동적인 읽기 방법으로는 텍스트(책)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런 평면적인 학습법이나 읽기 방법으로는 텍스트의 내용이 기억에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좀더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전략을 써야 한다. 적극적 독서법은 책의 내용과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질문을 만들어내고 연관관계(reading context)를 구성하여 기억의 맵(map)에다 각인한다. 이렇게 완전히 이해되고 소화된 정보와 지식만이 창의적으로 응용되고 활용될 수 있다. 이런 독서(학습)법의 전략으로서 ‘SQR3’ 독서법(recipe)을 소개한다. ‘SQR3’이란, Survey, Question, Read, Recite, Review의 머리글자이다.

  1. 텍스트(책)에서 읽거나 학습할 부분(chapter)을 개관한다. (Survey)
    • 도입 부분을 읽는다.
    • 세부 장·절의 제목을 훑어본다. 도표나 그림이 있다면 살펴본다.
    • 마무리 부분에 질문·핵심단어·요약 내용이 있다면 이 부분도 대강 훑어본다.
    • 책 속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도록 연관관계(reading context)를 구성한다. (마인드맵이나 나름대로의 노트법을 활용)
    • 요점에 대한 감을 잡으면서 그것에 관한 자신의 흥미를 끌어내본다.
    • 읽기(학습) 계획을 잡는다. 한번 읽을 때의 시간량을 설정한다. 휴식 시간도 정하고 완료했을 때 자신에게 선사할 보상도 정해본다.
  2. 질문을 만들어내고 질문의 답을 찾는다. (Question)
    (읽거나 학습할 부분(chapter)에 대해서 다음 4 가지 기본 질문을 해본다.)
    • 요점이 무엇인가?
    • 요점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 요점의 응용이나 실례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 이 요점이 해당 부분의 다른 장·절, 텍스트(책) 전체, 인간 사회, 자기 자신에게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3. 해당 부분을 읽는다. (Read)
    • 내용과 필요에 따라 속독과 정독을 적절히 섞는다. 스스로 뽑아낸 질문의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춘다.
    • 책의 여백이나 노트에 특기할 만한 것들을 기록한다. 노트를 함으로써 읽는 이의 관심 맥락(context)에 따라 책 속의 정보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4. 요점을 복기(구술·논술)한다. (Recite)
    • 텍스트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 구술해본다. 직접 소리내서 말로 설명해보고 직접 자신의 답을 자신의 귀로 들어본다. 말은 글보다 기억을 오래 유지한다.
    • 요점을 뽑아내 글로 적어볼 수도 있다. (요점정리식이 아니라 서술형으로 적는다.)
  5. 재검토(복습)한다. (Review)
    • 읽은(학습한) 섹션을 되훑으면서 요점에 표시하고 밑줄을 긋는다.
    • 주목할 만한 대목의 여백에 추가 노트를 한다.

텍스트(책) 전체에 대한 이해와 학습이 필요하다면, 각 장·절에 대해서 SQR3을 반복한다. 완료됐으면, 해당 섹션 전체 또는 텍스트(책) 전체 내용의 요약을 한 장의 종이에 맵으로 그리고 정리한다.

이렇게 해서, 원하는 텍스트 내용을 소화했다면, 이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1. 일차적으로 직접 만든 요약 맵을 이용한다.
  2. (더 필요하다면) 텍스트(책) 본문의 밑줄과 여백의 노트에 주목한다.

이 레시피(recipe)는 표준적인 것이다. 활용하는 이의 취향과 습관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형되고 응용될 수 있다. 어떻게 이 레시피를 쓸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그러나 아직 어떤 취향이나 스타일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이 레시피에 적응할 것을 권장한다.

※이 포스트에서 언급한 책읽기 방법은 주로 정보·지식 습득 위주의 책읽기 방법에 관한 것이다. 다른 목적의 책읽기, 이를테면 문학텍스트의 읽기라든가 비판적 책읽기의 경우는 다른 방식의 읽기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은 모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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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창의적 천재로 태어났다. 취학하기 전에, 유치원 다니기 전에, 당신은 천재였다. 마음껏 부르고, 쓰고, 그리고, 만들었다. 그 모든 것들이 비상한 것이었고 독창적인 것이었고 상상력으로 충만한 것들이었다. 발명가였고 가수였고 작곡가였고 화가였고 작가였고 시인이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음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의심스럽다면 취학하기 전에 남겨놓은 그 모든 독창적인 작업들을 다시 꺼내 살펴보라. 학교라는, 더 근본적으로 교육이라는 괴물이 당신을 ‘4비트 CPU’로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당신이 천재였다는 것을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중등교육 12년[각주:1]을 무사히 모범적으로 마쳤다면 이제 당신은 바보가 되었다. 이 바보는 순진무구한 천사라는 뜻이 아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로보트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계산만 할 줄 아는 저성능의 CPU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 모든 찬란했던 재능은 난도질 당해서 잘려 나갔고 창의력, 창조적 상상력은 제대로 싹트기도 전에 짓밟혀 버렸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12년 동안 교육받은 것은 계산의 기능적 숙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진실은 기성 체제와 규율을 몸과 마음에 내면화시켜, 자본의 이익에 순응적인 한 노동력 부품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1. 입시위주의 주입식 학교교육이 무덤의 본질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공교육의 문제점으로 품성교육의 실패,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상투적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학교교육-제도교육의 파행성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제도 보완으로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의 폐단이 해소되고 그럼으로써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거나, 정상화된 학교교육은 전인적 인간의 완성이라는 본래적 교육이념에 근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체제와 사회적 지배질서의 함수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참으로 무지한 생각이 될 수밖에 없다. 암기력와 계산력만 숙련시키는 파행성은 사실 파행성이 아니라 제도교육-학교교육의 은폐된 목표의 한 항목이다. 국가의 교육정책이 겉으로 표방하는 전인적 인간의 완성이라는 수사여구는 단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헛것이다.

2. 무덤의 본질은 학교 교육 그 자체에 있다

《바보 만들기》미국의 대안교육 운동가 게토는 ‘우리는 왜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라는 화두로 쓴 《바보 만들기》라는 책에서, 학교교육, 즉 제도 공교육의 숨어 있는 가장 핵심적인 커리큘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보 만들기’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바보 만들기는 바로 창의성의 말살을 뜻한다.

학교는,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교실은 국민대중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국가적 장치다. 학교제도는 산업문명 이래로 통제되고 체제순응적인 인간을 찍어내는 공장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학교에서 자주적 개성과 창의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복종과 규율이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사회화되고 사회성이 길러진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말이 좋아 사회성이지 그것은 사회성이 아니라 통제에 길들여지고 조직 속에 순응하는 자기검열의 내면화 과정일 뿐이다. 군대와 감옥과 공장과 학교는 결국 동일한 모델에서 나온 것들이다.

3. 학교교육의 숨겨진 커리큘럼

앨빈 토플러는《제3의 파도》에서, 신석기혁명(경작의 시작)으로 시작된 농업문명을 제1의 파도로, 17~18세기의 산업혁명으로 형성된 산업문명의 파도를 제2의 파도로, 20세기 중반 이후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식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문명의 변화를 제3의 파도로 표현하고 있다. 토플러는 산업혁명으로 형성된 공업사회의 핵심 장치로서 산업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교육을 지적하고 있다.

공업사회의 기반은 대중들의 공장노동이다. 이 공장노동을 효율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 공장시스템을 모델로 하여 대중적 학교교육이라는 제도를 실시하게 된다. 학교의 교실에서 표면적인 커리큘럼으로서 초보적인 읽기·쓰기·셈하기를 익히게 하고 기초적인 상식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숨겨져 잘 보이지 않는 커리큘럼이 있으니, 그것은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 반복작업의 숙련이라는 과목들이었다. 이게 바로 근대적 학교교육의 진짜 목적이고 핵심이었다고, 토플러는 설명한다. 자주적 개성이나 창의성은 이 숨겨진 커리큘럼의 적이다. 제도 공교육의 대상은 계속 확대되어 7~8세까지 내려간다. 이런 대중교육 체제는 현재까지도 세계 대부분의 산업화된 국가들의 당연한 전제가 되고 있다.

19세기에 독일의 프로이센 정부가 국민통합과 통제를 목적으로 이른바 근대적 제도 학교교육을 고안해낸 이래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19세기후반에 서유럽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일본은 재빨리 독일식 국민교육을 수용해서 전국적으로 실시했고 조선을 침략·강점한 이래로 식민지 조선에까지 실시하게 된다. 이 과정이 현재 한국의 학교교육의 전사(前史)이다. 이전까지 원초적 형태의 교육기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배계층의 소수에게만 허용된 영역이었다. 오늘날처럼 미성년국민 전체에게 강제적이고 의무적으로 시키는 교육제도는 없었다. 말하자면 학교라는 형태는 근대 자본주의의 내적 필요에서 비로소 나온 고안물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대공장제도에 맞게끔 국민대중의 육체와 정신을 통제하려는 지배계급의 기획이 근대적 대중교육의 장치로서 학교를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학교는 지난 2백년간 지구상의 모든 산업화된 지역에서 본래 목적하는 바를 충실히 성취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4. 창의적 배움은 학교 바깥에서 게릴라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한국의 제도교육 속에서 창의력을 살려낼 방도는 없다. 지난 200년 동안 대성공을 했기 때문에 학교시스템은 근본적 혁명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하고 역동적인 학교바깥의 사회체험에서 격리된 채, 토막난 시간표 속에서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교과서들과 교과과정만 일방적으로 강제되고 주입된다. 그나마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만든 교과서에 입각한 수업조차도 학교 현장에서는 거의 서류상으로만 행해지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관행적 주입식 수업만이 되풀이된다. 배우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의로운 생각이나 발상을 키우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서류상의 교과과정에 맞추어야 하고 시간표를 맞추어야 하고, 그리고 장학사의 감독에 대비해서 서류상으로 구색을 갖출 뿐이다. 과학실이라고 있어봐야 거기서 하는 것은 시험문제 풀이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과학적 창의성이나 예술적 창의성이 나오겠는가.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배우는 과정은 현행 학교 교육제도의 틀인 시간표와 계단식 커리큘럼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배우는 과정은 교육(education)보다 먼저 실제로 하기(doing)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교육의 결과로 우리가 뭔가를 배우는 게 아니라 실제적 활동을 통해서 학습하게 된다. 이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학교에서 어떤 커리큘럼을 통하여, 짜여진 시간, 특정한 공간 속에서 커리큘럼의 성실한 이행을 통해서 배우는 걸로 착각한다.

창의성이나 창의력은 자유로운 놀이와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진정한 방식 즉 게릴라 학습에서 길러지고 확충된다. 그러나 제도교육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커리큘럼이라는 틀을 학생들에게 강요한다. 그 틀에 맞지 않는 것은 모조리 배제된다. 아이들을 일정시간과 일정공간에 집단으로 모아 놓고 획일적으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내용을 가진 수업이라는 형태는 사실 창의성과 창의력과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것이다.

창조적으로 생각하려면 머리에 여백이 많아야 하는데, 오늘날의 우리 학생들은 정해진 수업시간표로만 머리를 가득 채울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서 상업적 사교육 시간표까지 머리 속에다 가득 쑤셔 넣는다. 아이들의 마음과 머리 속에 더 이상 창의성의 기반이 되는 여유와 놀이가 없다. 끝없이 교과서 내용을 주입받고 주입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청소년기 대부분을 ‘먹어버린다.’

앨런 파커 감독이 만든 《The Wall》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yod)의 두 장짜리 더블 앨범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앨범 중에 가장 유명한 곡은 〈Another blick in the wall〉이라는 곡이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도 여기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의해서 차례로 운반되다가 소세지를 만들어내는 기계 속으로 하나씩 떨어져 들어간다. 그 기계를 통과한 아이들은 소세지가 되어 통으로 떨어져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바로 학교교육이 무엇을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Another blick in the wall〉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 leave those kids alone.
Hey, Teacher, leave those kids alone!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우리에게 교육 따위는 필요없어요.
우리 생각을 통제하려 하지 말아요.
교실에서 역겨운 잔소리 좀 하지 말아요.
선생, 아이들 좀 내버려 둬요.
이봐요, 교사양반, 애들을 그냥 냅두라니까요!
그래봐야, 결국 벽 속에 벽 하나 더 얹을 뿐이라구요.
아무리 그래봐야, 결국 선생도 벽 속의 또다른 벽돌에 불과하다구요.)

※ 교육받는 우리도 거대한 통제체제의 부품일 뿐이고, 가르치는 교사도 그 통제체제의 부품일 뿐이라는 얘기다.

  1. 이 글에서 말하는 창의성의 무덤으로서 학교교육은 초·중·고등학교 교육, 즉 중등교육으로서의 국민교육을 말한다. 따라서 고등교육 장치인 대학교는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므로 제외된다. 일단 제외되기는 하지만 사실 창의성의 무덤이라는 면에서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교도 이 사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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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의 세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양이 질을 만들어낸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수많은 시도가 쌓이고 쌓여야 겨우 하나 건져낼 기회가 생긴다. 가득 찬 아이디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하나를 가까스로 발견하는 정도다. 쓰레기통이 가득 차지 않는다면 장미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 두 개의 쓰레기에 하나의 장미꽃은 가능하지 않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헛삽질 끝에 원하는 바로 그 삽질이 나오는 것이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서 9,000번의 헛삽질을 했고, 축전지 배터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실험을 5만 번이나 시도했다고 한다. 전구용 필라멘트를 개발하려는 실험에서 수천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 때, 조수가 실험을 포기하자고 했지만 에디슨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천 번의 삽질을 조수는 실패로 간주했던 반면에, 에디슨은 실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의 확인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이 유명한 일화는 바로 양이 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빛나는 아이디어의 포착 가능성은 바로 시도의 횟수에 비례한다. 창조성의 우주에서는 원샷이 통하지 않는다. 번뜩이는 원샷의 이면을 살펴보라. 거기에는 수많은 집념의 시도가 널려 있을 것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시도의 금자탑이다. 독창성은 풍부한 사고에서 탄생한다.

블로그는 창의력 계발과 아이디어 창출의 훌륭한 도구가 된다. 아이디어 포착의 과정은 마라톤의 속성을 갖는다. 마라톤은 긴 승부다. 기회의 기복이 있고 위기가 있다. 좌절이 있고 낙담이 있다. 끈질긴 집념과 지구력이 마라톤의 승부를 결정짓는다. 블로그의 쓰임새는 저널리즘, 정보공유, 마케팅, 자기표현 등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아이디어 창출의 도구로서 블로그에 주목하고 싶다. 블로그는 바로 아이디어 마라톤이다.

《생각의 도구》《생각의 도구》를 쓴 가토 마사하루는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도구로서 아이디어 마라톤을 제안하고 있다. 평소에 아이디어 목록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하루에 아이디어 목록을 채울 개수를 정한다. 아이디어 하나 하나에 일일이 번호를 매기고 자기의 일과 일상에서 관심사에 해당하는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이디어의 품질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쓰레기든 장미꽃이든, 되든 안되든 목표량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날마다 아이디어 목록을 이어나가다 보면 창의적 사고에 추진력이 되는 몰입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몰입의 위대한 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목록의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쓸모 없을지 모른다. 아이디어 쓰레기산의 높이만 높여줄 것이다. 그러나, 이 높이가 바로 장미꽃을 키워내는 거름이 된다. 또한 목록을 이어나가는 몰입의 힘이 바로 빛나는 원샷을 지르게 해준다. 목록을 이어나가면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일이 없다면 지루함이나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피로회복제를 마련해놓는 것도 필요하리라. 목표량을 초과해서 목록을 채우는 날에는, 예를 들어 하루에 2개인데 5개를 채웠을 때,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소에 자기 자신에게 주고 싶은 상의 목록을 미리 챙겨 놓는다. 어떤 상이든 좋다. 이를테면, 디카나 핸드폰 같은 거창한 상도 좋겠지만, 시원한 캔맥주 하나 같은 소소한 상이라도 좋다.

바로 그 아이디어 마라톤을 블로그로 할 수 있다. 당장 아이디어 마라톤을 시작할 블로그를 새로 만들거나, 아니면 이미 블로그를 하고 있다면 한 코너(카테고리)를 만들고 하루에 채워야 할 목표량을 정하라. 포스트 하나에 아이디어 하나다. 하루에 1개도 좋고 10개도 좋다. 이 아이디어 목록을 공개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면 비공개로 해도 좋다. 공개하면 강제력을 띠게 되고 이것이 집중력을 높이는 데 더 유리하다. 설사 한 동안 목록을 이어가다가 용두사미가 된다고 해도 낙담하지 말라. 영원히 그만 두지만 않으면 된다. 뱀꼬리 다음에 다시 새로운 용대가리가 이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용대가리가 10개 정도면 어느덧 습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반복적인 시도가 결국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만들어준다.

블로그에 아이디어 목록을 채워나갈 때 노트에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의 질에 신경쓰지 말자. 요약식 어구도 좋고 문장 서술형도 좋다. 텍스트나 이미지 스크랩도 좋고 동영상이나 사운드도 좋다. 미투데이도 좋고 플레이토크도 좋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의 질이 아니라 아이디어 개수다.

그렇게 아이디어 목록을 채워나가는 행위가 바로 창의력과 몰입력의 훈련이 된다. 지금 당장 블로그로 아이디어 마라톤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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